이은혜 글항아리 대표


반복은 어떤 일을 쉽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런데 책 읽기는 다르다. 직업으로 삼아 하루 10시간 이상 20년간 했는데도 수월해지지 않는다. 난해한 뒷골목 같은 텍스트는 읽기를 자아와 삶의 방편으로, 관계의 윤활유로 삼은 독자조차 산산이 부숴버린다. 처음부터 다시 읽으라고 재촉한다. 여성적 읽기-쓰기를 보여주는 김지승의 『마지네일리아의 거주자』와 수잰 스캔런의 『의미들』이 바로 그런 종용을 한다. 송곳보다 더 예리하게 글을 쓰는 두 작가는 당신의 앎을 폐허로 만들며, 잿더미에서 다시 언어를 배우도록 독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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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산하는 몸’은 여성들만 경험 몸의 흔적은 언어에 뿌리내려 여성의 쓰 카카오야마토 기와 읽기, 풍성해져 」



김지윤 기자


나는 얼마 전 편집자 채용 논술 문제를 냈고, 그중 하나로 오늘날 여성적 글쓰기의 지배적 흐름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그때 마침 『마지네일리아의 거주자』를 읽던 중이었고 첫 황금성사이트 글부터 불편감이 들었는데, 불편을 느끼는 원인이 나에게 있는 듯해 더 박차를 가해서 읽었다. 마지네일리아(marginalia)는 ‘여백(margin)에 있는 것들’에서 파생된 단어로 메모·주석·표식 등 독자가 책을 읽으며 스스로 비평적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 여백에 나 역시 메모를 빽빽이 했는데, 이 과정이 쉬운 건 아 야마토릴게임 니었다. 이 책은 독후감을 묶은 것이다. 목록에 등장하는 리스펙토르·모리슨·찬쉐·차학경을 나도 이미 읽었지만 김지승처럼 읽지 못했음을 깨닫는 과정은 저자에 대한 경외와 자기비하의 감정이 동시에 들게 만들었다. 나는 리스펙토르를 3년 전 리스본행 비행기에서 봤는데 어둠보다 더 칠흑 같은 그 세계를 끝까지 직면하는 데는 실패했다. 지하 동굴 같은 찬쉐의 세계는 릴게임갓 흥미롭게 탐험했지만, 김지승처럼 그 작품을 읽으며 “봄에서 계속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은 느끼지 못했다. 읽기란 저자가 쓴 것에 응답하는 일이건만, 나의 독해는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여성들을 진술할 그릇이 될 수 없었다.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이란 부제가 달린 수잰의 책은 어느 아침 출근해서 펼쳤다가 완전히 사로잡혀 계속 읽어 바다이야기고래출현 나갔다. 뉴욕, 정신병동, 감각의 끝마다 매달려 현재를 멈춰 세우는 과거 이야기…. 인간은 과거·현재·미래를 살지만, 우리가 가장 많이 사는 것은 과거다. 과거는 늘 현재와 미래 안에서 사라지지 않은 채 부피를 점점 키우기 때문이다. 수잰은 20대에 뉴욕 정신병동에 3년간 입원했고, 20년 뒤 다시 그곳을 방문해 이 회고록을 쓴다.
지난 몇 년 하이데거를 읽으면서 나는 핵심 개념인 ‘존재’와 ‘시간’ 가운데 존재를 훨씬 더 많이 생각했다. 시간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정신병동에 있는 이들에게는 ‘시간’이 없다. 그들은 약물 과용으로 인해 시간을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시간이 결여된 이들은 존재 또한 점점 빛이 바래 수잰 같은 이는 존재와 시간을 동시에 잃은 세월이 길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철학책 독해에서 큰 결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런 자각은 모두 ‘여성적’ 쓰기와 읽기를 한 저자들 덕분이었다.
독서 클럽을 10년 이상 운영해오고 있는 50대 남성이 있다. 오랫동안 그를 만나왔지만 얼마 전 봤을 때처럼 과거에 자신이 따랐던 ‘옳음’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는 오늘날 문명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은 ‘돌보는’ 몸이 아닌 남성들의 읽기-쓰기에 큰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철학자 김영민 역시 ‘여자들의 공부론’이라는 강의를 하면서 기득권 남성 학자로서 아이를 낳은 몸인 여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한계를 느끼며 그들 몸에 담긴 언어를 존재론적으로 깊이 고찰했다. 글쓰기는 몸을 끌고 수행하는 일인데, 어떤 몸은 오직 여성들에게만 있다. 김포에는 꿈틀책방이라는 곳이 있다. 여기서는 거의 매주 강독회와 북토크가 열리는데 모이는 이들은 언제나 여성들이다. 그들은 가장자리에 서는 법을 알기에 책을 읽을 때 자기 정서를 풍부하게 더해 늘 현실과 실재에 더 근접한다. 약자로서 여자들은 공부할 준비가 가장 잘 되어 있다.
여성적 읽기는 과거를 발굴하도록 돕는다. 즉 서랍 속에 방치된 기억들을 꺼내놓는데, 이때 흔히 거대한 수치심이 동반된다. 하지만 읽기가 삶에 뿌리내려 있어 삶이 책 읽기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수치심을 가치 있는 기억으로 전환해내는 데도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기억하고 회고하는 이들이 과거를 불러올 때 대체로 겹따옴표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억은 ‘사실’이 아니고 틀에 갇힐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다른 작가의 책을 인용할 때 겹따옴표를 쓰지 않고 고딕체나 이탤릭체로 서체만 달리하여 구분한다. 나의 쓰기와 내가 인용하는 글이 뒤섞이고 상대에게 녹아들어 둘 사이에 더는 이음매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에게 읽기는 언제나 쓰기와 하나 되어 서로의 몸속에 기거한다.
이은혜 글항아리 대표